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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12 아! 숨님의 솟구침: 억눌린 생명의 기(氣)사회우주전기<김흡영 교수의 도의 신학3>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59

생명·생태·도의 신학: 신·우주·인간(삼태극) 의 묘합(3)1)

셋째, 인간의 무한경쟁 콤플렉스와 탐욕에 의해 절명위기에 있는 생태계(geocide)와 멸종위기에 있는 생명(biocide)들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생태신학은 이러한 텅 비움(虛)의 ‘없이 있는’ 우주 생성적 역동성과 연약함(弱)의 거꾸로 솟구치는 반전(反)과 복귀(復)의 혁명적 에너지를 불어낼 수 있어야 한다.

뒤집기(반전)와 복귀의 혁명은 태극으로 말하면 정극동(靜極動)의 반전운동이요, 기(氣)로 말하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신기(神氣)의 역(逆) 운동, 곧 ‘숨님’의 솟구침이다. 숨님(神氣)의 솟구침은 곧 성령의 생명력이니, 생명생태신학은 성령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 절명위기의 생태계에서 상처받은 억눌린 생명들이 기의 분출을 타고 죽임의 세력을 거슬러 생명의 근원으로 솟구치는 반전과 복귀의 이야기를 ‘기사회우주전기(氣社會宇宙傳記)’라고 칭하고자 한다.

성령의 신학으로서 생명생태신학은 이 기사회우주전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우주는 숨을 쉬는 “몸집”이요, 기는 우주라는 몸집을 살리는 숨님(성령)이니, 기사회우주전기는 몸과 숨이 하나가 되는 “몸숨의 영성”을 지향한다.(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현실의 극대화 그리고 기계인간 사이보그의 출현을 앞두고 이 ‘몸과 숨의 영성’의 개발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2)

교의적 정통시비의 위선을 비판하고 민중의 사회전기를 신학의 주제로 부각시킨 것은 한국 민중신학이 이루어낸 한 중요한 공헌이다(김용복).3) 그러나 생태계의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지금 사회적 개념의 민중만을 고집한다면 그것도 역시 인간역사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고, 민중은 억눌린 생명들과 짓밟힌 생태계(우주)를 포함한 사회우주적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생태신학은 억눌린 생명들과 망가진 생태계와 이를 살리는 성령의 힘(氣)에 얽힌 이야기, 곧 기사회우주전기를 주요 주제로 다루어야 한다.

이것은 생태문제(eco)와 사회정의(justice)간의 이원화를 극복하고 통합된 생태정의(Eco-justice)를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계통의 생명신학들의 주장과 일치한다.4) 또한 이것은 십자가 위에서 대속적 수난을 받는 그리스도와 같이 인간의 죄와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의 질곡을 대신 짊어진 “상처받은 영성(the wounded Spirit)” 또는 “십자가형 영성(the cruciform Spirit)”에 초점을 맞추고 생태신학을 구상하자는 월리스의 녹색영성신학과 공명한다.5)

그러나 월리스의 경우에도 존슨과 마찬가지로 희랍적 사고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상처받은 영성”은 탁월한 제안이나, 그 속에 아직도 초월(성령)과 내재(자연)를 구별하는 이원론이 깔려있고, 그 대안에 대한 구체적 얼개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숨님의 솟구침과 억눌린 생명의 기사회우주전기는 이러한 이원론적 한계를 넘어서 자연 속에 내재한 근원적 생명력(氣)에 명확한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와 같이 도의 신학은 그 구체적 얼개들을 도, 역, 태극, 이기(理氣) 등 자연친화적이고 생명경외적인 동양 사상들로부터 무궁무진하게 개발해낼 수 있다.

김지하의 수필「우금치 현상」은 이러한 도의 신학적 통찰(숨님의 솟구침과 억눌린 생명의 기사회우주전기)을 깨닫게 하는 한 좋은 예를 제공한다.6) 감옥에서 얻은 질병을 치료하려고 고향인 해남에 내려온 지하는 어린 시절 미역을 감던 개울이 쓰레기와 공해로 시커멓게 오염되어 개골창이가 된 것을 보고 실망한다. 그러나 비가 와서 홍수가 지면 쓰레기들이 모두 아래쪽으로 쓸어내려져 개울이 다시 깨끗해지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한다.

한번은 큰비가 온 적이 있는데 이때 지하는 깜짝 놀라게 된다. 빠른 물살이 쏟아져 내리는 사이를 수많은 붕어들이 아래에서 펄쩍펄쩍 뛰어올라 물 위쪽 상류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도대체 저 붕어들이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타고 위쪽으로 거슬러 오를 수 있는 것일까?” 암중모색과 같은 진화론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에 충분하지가 않다.

밤에 명상하던 중 그는 신기(神氣)의 활동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7) 기(氣)의 음양 운동을 통해 붕어의 상승운동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물의 기(氣)는 음양으로 움직인다. 물의 양은 하강작용을 하지만 물의 음은 상승작용을 한다. 물이 움직여 흘러내릴 때 동시에 물은 흘러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큰 강물이 도도히 흘러내릴 때 반드시 그 강에는 역류(逆流)가 있지 않던가! 이것은 물의 일기(一氣)의 운동 속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바로 이 기(氣)의 성품에 붕어의 신기(神氣)의 성품이 능동적으로 일치해 들어갈 때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8)

그래서 서구근대 역사관이 말하듯 역사는 미래의 목적을 향해서 직선적인 진보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양의 역사). 반대로 동시에 역사는 자기 근원을 향해 되돌아가는 창조적인 퇴보 곧 반환과 복귀를 하는 것이다(음의 역사).

지하가 붕어의 상승운동을 관찰하면서 터득한 기(氣)의 음양운동에 따른 새로운 역사이해는 그로 하여금 1894년 12월 공주 우금고개에서 있었던 동학 2차 봉기의 마지막, 가장 처절했던 전투에서 보여준 민중의 수수께끼 같은 힘의 참된 근원을 알게 한다. 이제 지하는 상승봉기, 기아봉기 등의 사회경제사적 설명이나 “한의 폭발”과 같은 문학적 설명은 피상적이고 오류라고 단정한다.9)

지하는 신기(神氣)의 음양운동에 일치하려는 엄청난 우주적 운동을 ‘우금치 현상’이라고 부른다.10) 이 ‘우금치 현상’은 도(道)-메타포가 내포하고 있는 반환과 복귀의 힘 그리고 약함과 비움의 역설적 역동성이 억눌린 생명들, 곧 공해로 망가진 개울의 붕어들과 탐관오리들에 의해 짓밟힌 우금치의 민중들이 연합하고 혁명적 생명력을 분출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반환과 복귀의 힘의 근원은 신기(神氣)의 역(逆) 운동이며 숨님의 솟구침이고 곧 성령의 생명력이다.(易[생명의 본질]은 逆[거슬러 솟구침]이라는 주역사상을 참조하라.)11) 이러한 짓밟힌 민중(사회)들과 상처받은 생태계(우주)를 살리는 (상처받은) 숨님(성령)의 솟구침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억눌린 생명들의 기사회우주전기’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이다.

‘우금치 현상’이 들려주는 기사회우주전기는 이원론적 사고에 젖어 있는 서양인들은 물론이고, 근대적 사고에 의해 훈련받고 흠뻑 빠져버린 우리들에게도 무척 생소하고 의아하게 들릴 것이다. 로고스모형과 프락시스 모형은 기사회우주전기의 배경이 되는 신기(神氣)의 현상학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강력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악마적인 파괴와 죽임의 세력(양의 역사)을, 그것을 거슬려 솟구쳐 올라가는 연약한 붕어는 생명의 힘(음의 역사)을 상징하고 있다.

해체주의 철학은 로고스-음성중심적 모형이 생명보다는 파괴의 세력과 더 친밀한 관계(족보)를 가지고 있다고 폭로해 주었다. 로고스모형은 이원적 파편화를 통해 생명을 위협하고 남성우월주의와 인종우월주의 등과 같은 사회학적 음모와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역사적 물줄기의 악마적 운동에 협조하여 왔다.

프락시스모형이 이 악마적 파괴의 힘에 저돌적으로 저항하고 있으나, 좁게 정의된 역사-사회-경제적 관심의 한계 안에 머물고 있어서 아직 파괴적인 힘의 기본 논리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프락시스 모형은 생명의 힘에 관해 주체적으로 충분히 진술하지 못한 채, 오직 파괴의 힘에 대항한 대응적 표출로 끝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道)모형의 기사회우주전기는 21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이 로고스모형과 동시에 프락시스모형의 한계를 극복하고 적절한 생명생태신학으로 구성되는데 필요한 새로운 해석학적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우금치 현상’이 들려주는 신기(神氣)의 현상학은 기(氣)가 우리 신학의 중요한 해석학적 열쇠와 풍부한 신학적 자원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기(氣)는 어떻게 연약한 붕어들이 무섭게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를 뚫고 거슬러 솟구쳐 올라갈 수 있는지, 우금치 전투에서 쏟아지는 신식 자동화무기의 집중포화를 향하여 돌진하는 민중들이 보여준 엄청난 생명력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해명해주고 있다.

도가 호도스(hodos)와 그러하듯이, 기(氣)는 성서에 나오는 희랍어 프뉴마(pneuma)와 매우 흡사하다(외적으로 바람, 내적으로 숨, 기능적으로 에너지). 기(氣)는 이원론적이거나 분석적이 아니고 종합적이며 포괄적이다. 그리고 기(氣)는 구속적, 곧 해방적이고 화해적이다. 기(氣)는 죽음이라는 물줄기를 뚫고 솟아나 반환과 복귀라는 생명의 근원적 힘을 발생하게 하는(易이 逆일 수 있게 만드는) 근거이자 매개체이다. 그러므로 이 신기(神氣)의 혁명신학은 생명생태신학에게 거슬러 솟구침(逆)의 생명 근원적 에너지를 부여할 수 있다.

민중도 여성도 모두 억눌린 생명의 일부이다. 여성, 민중, 붕어와 같은 억눌린 생명들은 더불어 같은 신기(성령)의 사회 우주적 운동의 주체들인 것이다. ‘우금치 현상’이 보여주는 것 같이 기사회우주전기는 기(氣)를 통한 생명의 공생적 그물망을 엮는 기우주생명적 비전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예수의 공생애도 한 억눌린 생명의 기사회우주전기라고 말 할 수 있다. 한 억눌린 생명 예수의 사회우주전기(수난사)가 구원의 도(道)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전우주적 거슬러 솟구침, 기사회우주전기의 완성을 뜻한다.

   
 
우리에게 종으로 와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시궁창이 된 개울과 같이 썩어가는 생태계와 그 속에서 착취당해 죽어가는 억눌린 생명들을 소생시켜서 역사의 세찬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반환과 복귀의 힘의 근원, 신기(성령), 곧 솟구치는 숨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우주의 순례자들인 우리에게 억눌린 생명들과 더불어 상생적 연대를 맺어 참된 생명으로 살 수 있는 길, 하늘땅사람의 참길, 진리와 생명의 길, 곧 도(道)를 가르쳐 준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학들은 절명위기에 처해있는 생태계와 생명들에게 우선적 선택권을 부여해야 하고, 억눌린 생명들이 우주생명 운동의 참된 주체라는 것을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신학들은 그 참된 주체들에게 성령의 생명력, 곧 신기(神氣)를 불어 넣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기는 지금까지 “외래의 서양식 혹은 일본식으로 잘못된 사상들에 의해 옮겨지고, 소외되고, 뿌리 뽑히고, 억압당하고, 더럽혀지고, 분할당하고, 감금당하고, 무시당하고, 파괴당하고, 노예가 되어 이제껏 죽임당해 왔다.”12)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신기가 무시당하거나 억눌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신학들은 외래의 사상들에 의해 억눌리고 막혀 있는 기맥과 경락들을 확 풀어버리고, 예수의 호연지기로 활연관통되어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우리 신학들은 에밀레종과도 같이 영혼의 가장 깊은 내부로부터 온 몸통을 울려 나오는 우리의 참소리, 곧 제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명생태신학들은 억눌린 생명들로 하여금 21세기를 무지막지하게 휩쓸 죽임의 문화와 반생명생태적 세력의 물줄기를 세차게 거슬러 솟구쳐 우주생명적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기사회우주적 복명의 역운동, 곧 율려(우주생명적 치유의 몸짓)를 춤출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13)

결론

현대천문학은 “우리 몸을 이루는 대부분의 원소들은 모두 지구가 생기기 이전인 머나먼 과거에 어느 뜨거운 별의 중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밝혔다(이영욱).14) 우주(별)가 우리 몸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우리의 몸이 곧 우주요, “저 별은 나의 별” 하는 동요가사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한자로 우(宇) 자는 “생명이 숨 쉬는 집”이라는 뜻이요, 주(宙)자는 “여자가 웃고 있는 집”이요, 따라서 “우주는 생명과 조화가 있는 몸집”이다(선순화).15)

따라서 우주는 전 생명체 몸의 근원이 되는 큰 몸이요, 생명이 숨 쉬고 사는 집이요, 하느님(한울님)이 생명의 살림살이 하는 한울(타리)인 것이다. 그리고 한울님(신), 우주, 생명(인간)은 모두 한(같은) 우리(한울)요, 같은 태극이니(一物一太極說), 곧 이 신우주인간의 삼재는 삼위일체적 하나인 것이다. 첫머리에 인용한대로, 도마는 이 우주생명의 하나 됨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설명한다(김시습 및 일물일태극설과 비교해보라).

그러나 이 하나였던 한울이(또한 그리스도가) 인간의 탐욕으로 형편없이 짓밟혀서 망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파괴를 막아야 한다. 우리의 한울을 살려야 한다. 하늘땅사람의 삼극지도는 이제 21세기를 맞이하여 생명과 생태와 신학으로 이루어진 삼태극의 삼위일체적 어울림(묘합)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생명생태신학은 신우주인간의 생명커뮤니케이션을 체득하고 상처받고 분열된 생태계를 몸과 숨이 하나가 되는 몸숨(기)의 영성으로 생명이 숨 쉬고 깃들 수 있는 집, 두레(사회)와 한울(우주)로 고쳐가는 맘의 얼개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현실의 매트릭스 속에서 착각과 혼돈에 빠질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몸숨의 영성은 사람을 참사람(하늘땅사람)답게 만드는 참생명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21세기가 요망하는 생명생태신학의 영성은, 생태계에서 멸절되어가는 동식물들과 같은 억눌린 생명들과 생명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상처받은 영성”과 “녹색 영성”이 되어야 하며, 그 상처의 아픔을 공유하는 “십자가형 영성”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치유하는 “꽃피”이었듯이, 인간들의 무자비한 생태계에 대한 횡포와 파괴에 의하여 억눌린 생명들이 받은 상처에 깊은 아픔을 느끼고(同體大悲) 우리가 그들과 함께 이 꽃피 숨님의 기우주생명 운동, 십자가형 율려의 솟구치는 몸짓에 동참하게 될 때 상처받은 지구와 생명들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막힌 귀를 열고 멀어버린 눈을 뜨고 우주의 소리를 듣고 몸짓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베어진 나무와 버려진 돌멩이(그리고, 흐르는 강물과 모래) 속에도 깃들어 있는 그리스도를 느끼고 만물들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몸의 소리와 움직임을 듣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속을 들여다보는 내관(內觀)부터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몸의 세미한 숨의 흐름(人氣), 땅숨(地氣)의 용솟음과 하늘숨(天氣, 神氣)의 빛 뿌림이 내 속에서 얼싸안고(水昇火絳) 하나가 되는 몸숨의 태극운동(어울림)을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태극운동이 신우주인간적으로 확장되어 하늘땅사람의 참길 그리스도의 숨님을 타고 율려에 맞춰 온하늘과 온땅과 온사람, 곧 온몸집이 한 숨(氣)으로 하나가 되는 억눌린 생명들의 기사회우주적 춤사위로 퍼져나가야 될 것이다. 우리들은 십자가 위에서 “꽃피”를 피워서 생명부활의 씨이 된 예수의 작은 씨들이 되어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내리는 죽임문화의 세찬 물줄기를 거슬러 솟아올라 살림문화를 싹트게 해야 할 것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사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롬 8:19-26)

후기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값진 경험을 했다. 생명, 생태, 신학은 평소에 익숙한 주제이고 그리 큰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석 달을 끙끙대었는데도 별 성과가 없었다. 자료들을 뒤적이며 쓰고 버리고 하기를 여러 번 하였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내 몸의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한 새로운 경험이요 깨달음이었다.

몸은 내게 말했다. “지구의 몸을 말하면서 남의 말들만 되풀이하지 말고 내 몸의 소리부터 먼저 들어보아라!” 남의 나라사람들이 한 남의 글들을 모아 주석하거나 어정쩡하게 짜깁기해서 각주 같은 글이나 쓰지 말고, 나의 말로 본문 같은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내 몸(꿈틀)으로부터 꿈틀거리며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고(耳) 깨친 내 맘(깨틀)의 소리, 곧 제소리(口)를 내보라는 것이다(聖).16) ‘나를 알고’(나알), 닭이 계란을 낳듯 그 알을 낳아보라는 것이다(알나). 그래서 이번에 용기를 내어 한번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내 몸과 맘()의 소리를 들어가며 제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부족하지만 알(얼)을 한번 낳아보기로 했다. 그 이 우리 신학하기에 박혀 한알, 속알, 씨이 되기를 바라면서.

1) 3번째 글. 1,2편은 다음 참조: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01 ;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23.

2) 김흡영, 「가상현실」, 『현대과학과 그리스도교』(서울: 기독교서회, 2006), 52-61 참조.

3) 김용복, 「민중의 사회전기와 신학」, NCC 신학연구위원회편,『민중과 한국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2), 369-389.

4) Dieter T. Hessel, ed., After Nature's Revolt: Eco-Justice and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2); Larry Rasmussen, Earth Community, Earth Ethics (Maryknoll: Orbis Books, 1996); Stephen Bede Sharpe, Redeeming the Time: A Political Theology of the Environment (New York: Continuum, 1997); Dieter Hessel, "Ecumenical Ethics for Earth Community," Theology and Public Policy 8, no. 1-2 (summer/winer 1996), 17-29; 또한 이삼열, 숭실대 그리스도교사회연구소편,『생명의 신학과 생명의 윤리, 생명의 신학과 윤리』(서울: 열린문화, 1997) 참조.

5) Mark I, Wallace, “The Wounded Spirit as the Basis for Hope in an Age of Radical Ecology,” Christianity and Ecology, 51-72; 또한 Sallie McFague, "An Ecological Christology: Does Christianity Have It?", Christianity and Ecology, 29-45.

6) 김지하, 『생명』 (서울: 솔, 1992), 188-191.

7) “아하 이제야 알겠다. 붕어가 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타고 오히려 거꾸로 거슬러올라 제 갈 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비밀을. 붕어의 신기(神氣)가 물줄기의 신기(神氣)에 하나로 일치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같은 책, 189)

8) 같은 책, 190. 계속해서 김지하는 말한다: “역사는 앞으로 진보하면서 동시에 뒤로 퇴보한다. 질량(質量)의 문제라고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도대체 앞이다, 뒤다, 진보다 퇴보다 하는 것이 가당치 않다. 오히려 안과 밖, 질(質)과 양(量)의 동시적인 수렴-확산운동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운동은 결국 자기 근원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되 그냥 돌아가지 않고 창조적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우주의 근원적인 한 기운, 곧 일기(一氣)의 음양운동인데, 인간은 이것을 자각적으로 그리할 수 있는 것이다.”

9) “아하, 이제 또한 알겠다. 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타고 그것을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붕어의 그 끈질긴 능동적인 신기(神氣)의 약동에서 저 수십만 민중의 양양된 신기(神氣)가 피투성이로 뜀뛰며 끈질기게 거슬러오르던 우금치 전쟁의 비밀을.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이것과 저것 사이의 승리 또는 실패라는 싸움이나 투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아서는 갑오 동학 민중혁명의 그 어마어마한 집단적 생명력의 비밀을 놓쳐버리거나 필경은 잘못 보아버리게 될 뿐이다.  잘못 보아 그저 쌓이고 쌓인 한(恨)의 폭발 따위 문학적 표현이든가 그저 상승봉기, 기아봉기 따위 피상적인 사회경제사적 관찰로 끝나버리고 말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이나 굶주림이나 신분해방 요구나 그 모든 것 속에 움직이는 민중의 집단적 신기(神氣)의 운동을 놓쳐서는 우금치의 비밀을 풀 수 없고, 한도 굶주림도 신분해방 요구도 그 역사적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 받을 수 없게 된다. 화승총이나 죽창 따위가 있었다고 하나 거의 맨손에 지나지 않는 그 수십만의 민중이 도대체 무슨 힘으로 일본과 이씨 왕조의 악마와 같은 크루프포의 작열을 뚫고 그 고개를 넘으려 했던 것인가?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며 실패와 실패를 거듭하며 주검을 넘고 또 넘어 그들로 하여금 해방을 향해 나아가게 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이듬해 을미의병에서, 제2차, 제3차 대의병전쟁에서 그리고 그 뒤 노일전쟁 당시의 민회(民會)운동에서, 다시 삼일운동에서, 천도교 청우당운동에서, 조선 농민사의 그 숱한 소작쟁의에서, 조선 노동사의 파업운동에서, 간도와 시베리아 그리고 두만강, 압록강 연변 지역에서의 무수한 독립군운동에서, 그리고 그것을 지원한 국내의 지하조직운동에서, 그리고 나아가 혹은 그 이념과 단체의 모습을 바꾸면서까지 그 뿌리에서 줄기차게 주력군으로 움직인 동학의 비밀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같은 책, 190-191)

10) “간단히 말해 그것은 동학을 통한 민중의 집단적 신기(神氣)의 대각성, 그것에 있는 것이다.  무궁광대하게 진화하며 사회화하며(同歸一體) 스스로 성화(聖化)하며 스스로 신령화(神靈化)하는 지기(至氣)가, 그리고 기화신령(氣化神靈)이 민중에 의하여 자각되고 실천된 것이다.  민중의 자각된 집단적 신기가 자기들을 향해 쏟아져내려오는 역사적 악마의 물줄기 속에서마저 그 역사의 근원적 신기와 일치하는, 그 기(氣)의 음양운동에 일치하려는 엄청난 우주적 운동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두고 ‘우금치 현상’이라고 부르겠다.” (같은 책, 191-2)

11) 주역은 역(易[생명])을 역(逆[거스름, 솟구침])으로 보기도 한다(예컨대, 是故易逆數也[설궤전 우제3장]). 또한 이것은 유영모의 생명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명상록』 3, 51-52 참조).

12) 김지하, 앞의 책, 192.

13) 율려는 김지하, 『율려란 무엇인가?』 (서울: 한문화 멀티미디아, 1999).

14) 김흡영·이영욱,「현대 천문학과 인본원리」, 『그리스도교 사상』 514 (2001/10), 209-10.

15) 선순화, 「천체와 우주 몸 이야기」, 『선순화』, 26-42, 특히 28-9.

16) 김흥호,『명상록』, I, 112 참조. 한자 聖은 천지인을 가로지르는(王) 소리를 바로 듣고(耳) 바로 대언(口)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 김흡영 교수.
<필자 소개>

김흡영 교수는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을 거쳐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 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바드 대학 세계종교연구소, GTU 신학과학연구소(CTNS), 영국 캠브릿지 대학 고등신학종교연구원, 일본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이었다. 이후 강남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자, 동 대학 제 1대 학장, 신학대학원장, 교목실장, 우원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최근에는 중국 복단대학 초빙교수를 지낸 바 있다. 그는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에 있어서 세계최고의 권위를 가진 International Society for Science and Religion(ISSR)의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한 창립회원이자 정회원이다. 종교 과학, 종교 간의 대화, 문화, 종교신학, 조직신학 분야에서 왕성한 저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해외 출판업적이 눈부시다. 그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John Templeton Foundation의 GPSS Award 를 비롯하여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김흡영 교수  heupyoung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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